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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07 화둥 여행

[중국/상하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 상하이 대하민국임시정부 유적지 현판

 

고달팠던 대한민국 최초 정부의 흔적을 찾아서

 

따가운 햇살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 눈을 감고 있어도 날이 밝음을 알 수 있는 아침,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3일 동안 비를 맞고 돌아다니다 보니 온몸이 찌뿌듯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다행히도 날이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 민박집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단지 풍경

 

민박집에서 차려준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난 먼저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입구에는 이미 우리를 태우고 갈 멘빠오처가 대기하고 있었다.

 

수학쌤 가족들이 나오기 전까지 난 잠깐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둘러본 후 차에 올랐다.

 

# 민박집 앞에 대기 중인 멘빠오처

 

# 민박집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풍경

 

'상하이'에서의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신이 깃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上海大韩民国临时政府旧址)'였다.

 

 

출근 인파로 붐비는 '상하이'의 도심 한가운데를 뚫고 멘빠오처가 도착한 곳은 인적 드문 낡은 주택가였다.

 

'과연 이런 곳에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품고 조금 걷다 보니 붉은색 벽돌의 낡은 주택가 입구에 커다란 태극무늬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라고 쓰인 현판이 나타났다.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현판

 

여행을 오기 전 이미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에 대해 알아보고 오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보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나마 지금은 중국에서도 유적지를 철거하지 않고 관리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임시정부가 있던 곳이라고 하기엔 그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여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입구 거리 풍경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입구

 

가슴 아픈 것도 잠깐, 우린 우선 입구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긴 후 서둘러 유적지 관람을 하기 위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입구에서

 

1919년 3·1 독립선언에 기초해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같은 해 4월 11일 대한민국의 망명 정부가 세워졌고, 9월 11일에는 경성(서울)과 러시아 연해주 등 각지의 임시 정부들을 통합해 '상하이'에서 단일 정부를 수립했는데, 올해로 100주년이 되었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1932년 5월 항주로 이전할 때까지 6년 동안 활동한 장소로서, 우리 정부는 한중 수교 이전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건물을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 '상하이시'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상하이시'와 공동조사를 진행하여 현재의 '마당루(马当路)' 건물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사용했던 건물로 확인하고, 1993년 일제 강점기 활동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현재는 '상하이시(上海市) 황푸구(黄浦区)' 인민정부의 관리하에 '황푸구 문물 보호단위 제174호'로 지정해 각별한 협조와 관심 속에 보존 관리하고 있다.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풍경

 

청사 건물의 1층과 2층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생활했던 공간이 복원되어 있다.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이 있고, 회의실은 회의용 탁자와 함께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 임시정부 초기 사용했던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주방은 당시 사용했던 모습을 그대로 복원했고 2층에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 겸 침실, 임시정부 요인들의 집무실,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가 복원되어 있었다.

 

3층에는 임시정부와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는데, 제1전시실 입구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년 탄생할 때부터 1945년 해방될 때까지의 역사가 소개되어 있다. 그 밖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최초로 사용했던 청사 사진과 독립선언서, 국민대회 취지서 및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제2전시실에는 '상하이' 시기 임시정부의 활동과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 이동시기 및 '충칭(重庆)'에서의 임시정부의 활동 및 해방 후 환국 과정 등도 소개되어 있었다.

 

 

 

 

#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전시관 풍경

 

숙연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전시관을 천천히 둘러본 후 우린 밖으로 나왔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라를 잃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망명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나라를 걱정하며 독립운동을 했을 우리 선조들의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나라를 잃은 망명 정부의 삶이라는 것을 머리 속으로는 이해를 해도, 마음이 아픈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리라.

 

난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과 이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거사를 준비했던 '윤봉길'과 '이봉창' 의사 그리고 '김구' 선생의 발자취와 그들이 느꼈을 고민과 두려움, 애국심 등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본 후 근처 '신텐띠(新天地)'로 가기 위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를 나왔다.

 

# 유적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앞 풍경

 

▶ 관련글 : 2018/09/12 - [China/'16 쓰촨 국제교류] - [중국/충칭]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 진열관

 

♣ 참고 사이트 : 주 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