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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07 화둥 여행

[중국/쑤저우] 줘쩡위엔(졸정원)

# 줘쩡위엔 촨우(船屋) (출처 : 위키백과)

 

강남 최대의 정원을 거닐다

 

'후치우(虎丘)'를 내려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비록 낮은 산이었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라고 '후치우'를 내려오니 배가 무척 고팠다.

 

우린 '쑤저우(苏州)'의 특산품 중 하나인 비단도 살펴볼 겸 비단공장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쑤저우'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런가 우리가 들어간 식당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북적거렸고, 음식도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 나왔다.

 

# 쑤저우 한 비단 공장 근처의 식당 풍경

 

든든하게 점심을 먹은 후 우린 걸어서 근처 비단 공장으로 이동했다.

 

비단 공장은 주로 패키지로 여행 온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곳이다 보니 공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보단 오히려 패션쇼와 비단 판매를 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별 감흥 없이 패션쇼를 감상한 후 잠시 공장 견학을 마치고 우린 '쑤저우'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위해 '줘쩡위엔(拙政园)'으로 출발했다.

 

 

 

# 쑤저우 비단 공장의 패션쇼

 

# 쑤저우 비단 공장의 비단 방직 과정 풍경

 

'줘쩡위엔(졸정원)'은 '베이징(北京)'의 '이허위엔(颐和园)', '쑤저우'의 '리우위엔(留园)', '청더(承德)'의 '비수산좡(避暑山庄)'과 함께 중국의 4대 정원으로 불리는 곳이다.

 

 

'줘쩡위엔'은 51,950m²의 면적으로 중국 강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의 하나로 평가받아왔다.

 

당나라 때 '루꾸이멍(陆龟蒙)'의 개인 사저였으며, 원나라 때는 '다홍사'라는 절이었다. 이후 1510년 명나라 때 '왕시엔천(王献臣)'이 절을 사들여 친구이자 화가였던 '원쩡밍(文徵明)'과 함께 개인 정원으로 바꾸었다.

 

'줘쩡위엔'이란 이름은 서진의 학자 '판위에(潘岳)'의 '한거부(閑居賦)'에 나오는 말로 '此亦拙者之爲政也(졸자(拙者)가 정치를 하는구나)'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졸저(拙著)', '졸고(拙稿)' 등의 경우와 같이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경우에 '拙'이란 말을 쓰는데, '줘쩡위엔'이란 이름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낮춰 부르는 의미인 것이다.

 

'왕시엔천' 사후, 그의 아들이 도박으로 '줘쩡위엔'을 잃었고, 그 후 계속 주인이 바뀌다가 1631년부터 정원이 동··서로 쪼개어 팔리기도 했으며 여러 용도로 변용되고 방치되다가, 1949년 세 정원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1952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 줘쩡위엔 안내도 (출처 : people.cs.nctu.edu.tw)

 

중국의 4대 정원이란 호칭에 걸맞게 '줘쩡위엔'은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해 준 건 '둥위엔(东园)'의 '푸롱시에(芙蓉榭)'였다.

 

# 줘쩡위엔 둥위엔의 푸롱시에 풍경

 

연못 위에 비친 '푸롱시에'의 모습을 감상한 후 연못가로 나 있는 긴 회랑을 따라 이동해 '둥위엔'의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 줘쩡위엔 둥위엔의 연못가 회랑 풍경

 

천천히 '둥위엔'의 이곳저곳을 구경한 후 우린 '둥위엔'에서 '중위엔(中园)'으로 넘어왔다.

 

 

# 줘쩡위엔 둥위엔 풍경

 

'줘쩡위엔'의 '중위엔'은 한가운데 넓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에는 조그만 인공섬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사철 푸른 정원수들과 고풍스러운 정자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래도 '중위엔'은 큰 연못이 정원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보니 다른 곳 보다 좀 쌀쌀했다. 점점 얼어가는 손을 입김을 불어 녹여가며 산책을 한 후 우린 '줘쩡위엔'의 마지막 정원인 '시위엔(西园)'으로 자리를 옮겼다.

 

# 줘쩡위엔의 중위엔 풍경

 

# 줘쩡위엔의 중위엔에서

 

 

 

 

# 연못과 정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줘쩡위엔의 중위엔 풍경

 

1시간여의 '줘쩡위엔' 관광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코스인 '시위엔'에 들어섰다. '시위엔'에는 따로 섬은 없었지만, 연못가로 나있는 회랑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우린 회랑을 따라 걸으며 '줘쩡위엔' 산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51,950m²란 어마어마한 부지에 조성되어 있는 개인 정원인 '줘쩡위엔' 관람을 마치고, 난 당시 정원의 주인이었던 '왕시엔천'의 재력에 대해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도 이 정도 크기의 개인 정원을 소유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명나라 때 이곳을 구입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렇게 거대한 정원을 꾸몄다는 것 자체가 위대해 보였다.

 

하지만 '왕시엔천'의 부귀영화도 잠시, 그의 사후 어리석은 아들이 도박 빚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날려버렸다는 사실에 돈이 많은 것도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줘쩡위엔의 시위엔 풍경

 

# 줘쩡위엔의 시위엔에서

 

# 줘쩡위엔 시위엔의 위엔양관(鸳鸯馆)

 

'줘쩡위엔'을 나와 잠시 기념품 상점가에 들러 구경을 한 후, 우린 여행으로 지친 몸을 풀기 위해 '쑤저우'의 한 안마소로 이동했다.

 

우린 전신 마사지로 여독을 푼 후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쑤저우' 관광을 마치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왔다.

 

# 줘쩡위엔의 기념품 상점가에서

 

# 여독을 풀기 위해 들린 쑤저우의 한 안마소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