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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06 둥베이 여행

[중국/창춘] 웨이황궁(위황궁)

# 창춘 웨이황궁의 지시러우

 

마지막 황제 푸이를 만나다

 

여행 셋째 날이 밝았다.

 

우린 전날의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민박집에서 제공해 주신 아침을 먹고 '멘빠오처(面包车)'를 빌려 '창춘(长春)' 구경을 나섰다.

 

# 창춘 팔각정 민박에서 기·가쌤, 수학쌤과

 

# 창춘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팔각정 민박

 

# 창춘 여행을 위해 하루 렌트한 멘빠오처 앞에서 영어쌤과

 

우리의 '창춘' 첫 여행지는 '웨이황궁(伪皇宫)'이었다. 일단 '멘빠오처' 기사님께 '웨이황궁(위황궁)'으로 가자고 하니, 기사님은 왜 하필 '웨이황궁'으로 가냐고 물으셨다.

 

중국의 '둥베이 지방'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일본이라면 치를 떤다. 아무래도 '둥베이'가 예전 '만주(满洲)' 지역이다 보니, 이 지역도 일본의 침략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 침략과 '웨이황궁'이 무슨 관계길래 기사님이 싫어하셨던 걸까?

 

일본은 '만주'를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 멸망한 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仪)'를 허수아비 황제로 내세워 '만주국(满洲国)'을 세우는데, 이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 '푸이'가 살던 곳이 바로 '웨이황궁'이기 때문이었다.

 

난 기사님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도 역사의 한 부분이며, 이를 본보기 삼아 훗날 똑같은 실수를 하지 범하지 않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라 설명한 후 '웨이황궁'으로 출발했다.

 

 

'웨이황궁'에 도착하자 기사님께서는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구경하고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주차장 위치를 확인한 후 본격적인 '웨이황궁' 관람에 나섰다.

 

# 웨이황궁 진입로의 기념품 상점

 

# 웨이황궁 진입로에서

 

# 웨이황궁 진입로에 전시된 푸이가 타고 다니던 자동차 앞에서 선생님들과

 

'웨이황궁'은 '만주국 황궁(满洲国皇宫)' 또는 '위만황궁박물원(伪满皇宫博物院)'이라 부르며, 만주국의 수도인 '신징(新京,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창춘시)'에 건축된 만주국 황제 '푸이'의 궁전이다.

 

만주국이 1934년에 제정으로 이행되기 전인 1932년에는 집정부(执政府)로 사용되었다가, 1945년 8월에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만주를 침공한 붉은 군대(소비에트 연방군)가 '신징'을 점령하는 혼란기에 궁전의 대부분이 망실되었다고 한다.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궁전의 일부를 복원하여 만주국에서 일본 관동군의 만주 점령 정책의 역사를 전시하는 '위만황궁박물원'으로 공개했다.

 

# 웨이황궁 지시러우

 

'웨이황궁'의 '지시러우(辑熙楼)' 안에는 만주국의 황제 '푸이'와 그의 아내 '완룽(婉容)'이 거처했던 방을 그대로 재연해 관람객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 마지막 황제 푸이가 사신들을 맞이하던 의자

 

 

# 웨이황궁 내 라마불교 법당

 

# 푸이가 내·외빈들과 만찬을 즐기던 곳

 

# 푸이가 타고 다니던 자동차

 

# 푸이의 어보

 

# 푸이의 서재

 

# 마지막 황제 푸이와 아편을 피우고 있는 그의 아내 완룽 밀랍 인형

 

'지시러우'에서 만주국의 황제 시절 '푸이'와 그의 아내 '완룽'의 흔적을 돌아본 후, 우리는 '친민러우(勤民楼)'로 들어갔다.

 

'친민러우'는 1층에서 일본의 침략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과 기록 등을 전시하고 있었으며, 일본·만주 의정서를 체결한 방이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2층은 '푸이'의 집무실과 고관대작들을 접견하는 근민전, 관동군 중장 '요시오카 야스나오(吉岡安直)'의 집무실 등이 그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었으며며, '통더덴(同德殿)'과 연결된 통로가 있었다.

 

# 웨이황궁 친민러우 앞에서

 

# 친민러우에 전시되어 있는 황상에 앉아 있는 푸이

 

# 마지막 황제 푸이가 황제에서 공민이 될 때까지의 일대기를 전시해 놓은 전시장 앞에서

 

# 푸의가 황제였을 당시 입었던 옷들

 

# 공민이 된 푸이가 투표를 하는 모습

 

'친민러우'에서 황제 '푸이'의 일생을 관람한 후 밖으로 나와, 옆에 위치한 '시화위엔(西花园)'에 잠시 들렀다.

 

# 웨이황궁 시화위엔 입구에서

 

# 웨이황궁 시화위엔에서 영어쌤, 국어쌤과

 

아담하지만 예쁜 정원 '시화위엔' 구경을 마친 후, 우린 '통더덴'을 지나 '웨이황궁' 밖으로 나왔다.

 

# 웨이황궁 통더덴

 

# 통더덴 앞 지시러우 담장을 배경으로

 

# 웨이황궁 관람을 마치고 지시러우로 들어가는 창춘먼(长春门) 앞에서 선생님들과

 

자신이 원해서 황제가 된 것도 아니고, 자시의 의지로 공민으로 살았던 것도 아닌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

 

인간으로서의 '푸이'는 일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뭐 하나 한 것 없는 우여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두 번이나 떨어졌으며, 정신병을 갖고 있던 여인 '완룽'을 아내를 맞이해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결국 문화대혁명 시기 암에 걸려 홍위병의 공격을 염려한 병원들의 치료 거부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슬하에 자식 하나 없이 쓸쓸하게 세상을 떴다. 그리고 그의 이와 같은 일생은 마치 '청'과 '만주국'의 패망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어, 그가 더욱 안스럽게 느껴졌다.

 

우린 평생을 불행하게 산 인간 '푸이'의 고된 발자취를 돌아 본 후 '웨이황궁'을 떠났다.

 

# 웨이황궁 주차장에서

 

♣ 참고 사이트

 

1. 푸이 : 위키백과

2. 웨이황궁 : 나무위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