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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17 산인 여행

[일본/마쓰에] 호리카와 유람선

by 햇빛 찬란한 날들 2018. 10. 9.

# 기타가와를 떠 다니는 호리카와 유람선

 

시간이 멈춰버린 곳에서

 

처음 '산인 여행'을 계획할 때, 난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운 한편, 하루라도 빨리 이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복잡한 대도시를 여행하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사람이 드문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떠나온 '산인'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준, 그래서 현재까지 나에게 최고의 여행지가 되었다.

 

'산인'이 내게 최고의 여행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포스팅할 예정이지만 가을 바다와 가을 하늘이 더욱 푸르러서 가슴 시린 '톳토리 사큐(돗토리 사구)'가 있었고, '돗토리 사큐' 만큼이나 내 마음을 힐링 시켜준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마쓰에성'의 해자를 유유자적 떠다니는 작은 배 '호리카와 유람선(堀川めぐり)'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어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찾은 '오테마에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大手前堀川遊覧船乗場)'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우리와 같은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온 일본 현지 관광객들만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 오테마에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대수전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 (출처 : ユキサキナビ)

 

서둘러 탑승권을 구입한 후, 우리는 바로 앞에 위치한 나루터로 나와 마치 조각배 같이 아담한 유람선에 승선했다.

 

# 나루터에 정박해 있는 조각배 같이 작은 유람선

 

'호리카와 유람선'은 '전체 코스'와 '단축 코스' 두 개의 코스가 있는데, 우리가 간 '오테마에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은 총 3.7km의 코스에 약 5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전체 코스'의 유람선을 타는 곳이었다.

 

# 호리카와 유람선 코스 지도 (출처 : 호리카와 유람선)

 

# 호리카와 유람선 설명 (출처 : 호리카와 유람선)

 

일단 신고 온 신발을 벗어 뱃머리에 가지런히 놓은 후 사람들이 모두 앉자, 뱃사공 아주머니의 인사와 함께 뱃놀이 시 유의사항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우리가 설명을 못 알아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뱃사공 아주머니께서는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갑자기 무엇인가를 찾는 듯 뒤적거리시더니 이내 오디오를 켜셨다. 바로 한국말로 된 음성 서비스를 제공해 주신 거였다.

 

우리와 같이 탑승한 일본인 관광객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어느 도시에서 왔냐고 물어왔다. 난 자랑스럽게 '서울'이라고 대답했고, 다들 '혼토니!'라고 하며 부러운 듯 우릴 쳐다봤다.

 

'서울에서 온 게 그렇게 신기한 일인 건가?' 속으로 의아해 하는 사이 한국어 설명이 끝이 났고, 곧이어 유람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오테마에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을 출발해서

 

# 뱃머리에서 바라본 호리카와(堀川) 풍경

 

'마쓰에'는 '마쓰에성'이 축조된 이후 전쟁이 거의 없어, 성 주변 사무라이들이 살던 전통 가옥들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한다. '호리카와 유람선'은 '마쓰에성'의 해자를 일주하는 유람선인데, 배를 타며 해자 주변에 들어서 있는 마치 시간을 잊은 듯한 일본의 전통가옥들을 구경하는 것이 백미라고 한다.

 

# 기타다가와(北田川)를 떠 가는 유람선과 마쓰에레키시칸(마쓰에 역사관) (출처 : しまねキャッチナビ)

 

# 호리카와 유람선에서 바라본 부케야시키(무사의 저택) (출처 : さぬきの中心から日々を語る)

 

# 호리카와 유람선에서 바라본 기념품 상점 마쓰에고코로(松江ごころ)

 

 

# 호리카와 유람선에서 바라본 카지코보히로미쓰(鍛冶工房弘光) 거리 풍경

 

강물을 떠다니며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마쓰에'의 전통 가옥들을 감상만 하려고 하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유람선을 내가 운전하는 것이라면 잠시 배를 세워 놓고, 초가을 시간이 멈춘 고즈넉한 마을 길을 마냥 걸었을 텐데...

 

엄마와 이모에게 이따가 여기 한 번 걸어보는 게 어떻겠냐 여쭤봤더니, 엄마는 여기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시다며 다리가 아프셔서 싫으시단다. 이제 여행 둘째 날인데 벌써 다리가 아프시면 남은 일정에 차질이 있으니, 아쉽지만 전통가옥 거리를 걷는 것은 다음 여행으로 미루기로 했다.

 

# 호리카와 유람선에서 엄마와 이모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이 유람선은 '신하시(新橋)'로 들어서고 있었다.

 

# 기타다가와 신하시를 통과하기 전에

 

# 기타다가와 신하시를 통과해서

 

'신하시'를 통과해 나오자 '후레아이 광장 승선장(ふれあい広場乘船場)'이 나왔다. 우리는 '전체 코스'라 여기서 내리는 사람이 없어 정차하지 않고, 바로 배를 돌려 다시 '신하시'로 향했다.

 

# 후레아이 광장 승선장 (출처 : 시마네 돗토리 여행 가이드)

 

'후레아이 광장 승선장' 주변에는 가마우지로 보이는 새들이 강물 위로 나와 있는 나무 기둥에 도망가지도 않고 앉아 지친 날개를 쉬고 있었다.

 

 

# 후레아이 광장 승선장에서 쉬고 있는 새들

 

# 후레아이 광장 승선장으로 들어가는 호리카와 유람선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신하시'를 통과했다. 그리고 배는 우회전해 '이나리바시(稲荷橋)'로 향했다.

 

# 기타다가와 강변을 따라 늘어선 마쓰에고코로와 아기자기한 전통가옥 거리

 

'이나리바시'는 '신하시'에 비해 폭이 좁았다.

 

# 기타가와의 이나리바시

 

'이나리바시'를 통과해 양쪽 강변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하다 보면 '가메다바시(亀田橋)'가 우리를 반긴다.

 

 

# 이나리바시를 통과해 가메다바시로 향하는 유람선에서

 

# 기타가와의 가메다바시

 

'가메다바시'를 통과하자 '호리카와 유람선'의 또 다른 볼거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바로 '마쓰에'의 다양한 자연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구역이었다.

 

'마쓰에'는 시 자체가 워낙 오염이 되지 않은 청청 구역이다 보니, '마쓰에성'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가타가와' 강변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 강변 양쪽으로 수목이 우거진 자연 생태 구역

 

수목이 우거진 자연 생태 구역을 빠져나와 '료쿠쥬바시(緑樹橋)'를 통과하기 전 현대식 건물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졌는데, 바로 '시마네 켄리쓰 토쇼칸(島根県立図書館)'과 건너편의 '시마네 현청(島根県庁)'이었다.

 

# 시마네 켄리쓰 토쇼칸(시마네 현립 도서관) (출처 : 4travel)

 

# 시마네 현청

 

'호리카와 유람선'은 오직 시간이 멈춰버린 옛 거리만 유람하는 줄 알았었는데, 현대식 건물의 '현립 도서관'과 '현청'은 뜻밖이었다.

 

이모는 조카 잘 둔 덕에 '마쓰에'의 현재와 과거를 모두 볼 수 있고, 자연 생태까지 관찰할 수 있어 지금까지는 대만족이라고 매우 좋아하셨다. 순간 나 자신이 기특해지는 한편,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배는 순식간에 '료쿠쥬바시'를 통과했다.

 

# 유람선이 료쿠쥬바시를 통과하기 전에

 

'료쿠쥬바시'를 통과하자 갑자기 강의 폭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조노바시(花園橋)'를 통과하자 연이어 다리가 또 하나 등장했으니, '호리카와 유람선'이 지나는 다리 중 가장 폭이 좁다는 '우베야바시(うべや橋)'였다.

 

# 호리카와 유람선이 통과하는 다리 중 가장 좁다는 우베야바시

 

기존의 다리들과 비교해 '우베야바시'는 폭도 좁고 높이도 낮아 과연 유람선이 통과나 할 수 있을지 의심이 됐다.

 

배는 점점 다리에 가까워졌고 과연 어떻게 통과할지 궁금해하던 그때, 뱃사공 아주머니의 "수그리!" 소리와 함께 나와 엄마, 이모는 빵 터지고 말았고, 때를 같이해 배의 지붕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 귀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 색다른 경험을 하는 거다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 우베야바시를 통과하기 전 배의 지붕이 내려와서 기념으로

 

배는 다리의 높이가 낮다는 건 개의치 않은 듯 무심하게 '우베야바시'를 통과했다.

 

# 우베야바시를 통과하는 모습

 

# 우베야바시를 통과해 나와서

 

'호리카와 유람선'을 관람하다 보면 높이가 낮아서 배의 지붕이 내려오는 경우가 네 번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우베야바시'였던 거다. 그리고 앞으로 세 번을 더 허리를 숙여야 하는데, 난 그 허리를 숙여야 하는 남은 세 번이 너무 기다려졌다.

 

유람선은 '우베야바시'를 통과한 후 다시 좌회전해 '교바시가와(京橋川)'를 따라 흘러갔다. 그리고 늘어진 버드나무 강변을 지나자 '가라코로 광장 승선장(カラコロ広場乘船場)'이 나왔다.

 

# 교바시가와의 교하시(京橋)

 

배는 '가라코로 광장 승선장'에서 내리는 손님이 있어서 잠시 들렀다가, 우리가 출발했던 '오테마에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 호리카와 유람선 가라코로 광장 승선장 (출처 : あきひこゆめてつどう)

 

유람선은 '가라코로 광장 승선장'을 출발해 다리 몇 개를 더 통과한 후 다시 좌회전해 '요나고가와(米子川)'에 들어섰다.

 

'요나고가와'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다리 하나를 더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우리가 허리를 숙여야 하는 두 번째 다리인 '코부바시(甲部橋)'였다.

 

# 호리카와 유람선 코부바시 (출처 : ケイの旅ブログ)

 

우리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인 후 다리를 통과했다. 그리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 한채 세 번째 다리인 '신요나고바시(新米子橋)'를 통과했다.

 

# 요나고가와의 신요나고바시에 접근하고 있는 호리카와 유람선

 

'신요나고바시'를 나오자 양쪽 강변으로 예쁜 집과 아름드리나무, 거북이가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 요나고가와 강변 풍경

 

어느덧 유람선 관람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요나고가와' 끝에서 다시 좌회전을 하자 허리를 숙이는 마지막 다리이자 높이가 제일 낮은 '후몬인하시(普門院橋)'가 나왔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숙여 '후몬인하시'를 통과했다.

 

# 높이가 제일 낮은 후몬인하시로 접근하고 있는 모습

 

이제부터는 편안하게 유람선에 앉아 작은 동산 너머로 보이는 '마쓰에성'을 감상하는 시간! '기타호리바시(北堀橋)'의 근처에 다다르자 멀리 '마쓰에성'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 기타다가와의 기타호리바시와 왼쪽으로 보이는 마쓰에성

 

아무 생각 없이 다음 여행지인 '마쓰에성'의 웅장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배는 '기타호리바시'의 바로 앞에까지 도착했다. 다리 밑에는 오리 가족이 헤엄을 치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 기타호리바시 아래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오리떼

 

'기타호리바시'를 지나자 '마쓰에성'이 더 확실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 호리카와 유람선에서 바라본 마쓰에성

 

우리의 '호리카와 유람선' 뱃놀이는 '우가바시(宇賀橋)'를 통과해 다시 '오테마에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 기타다가와의 우가바시

 

50분 남짓의 유유자적 시간이 멈춰 버린 도시에서의 뱃놀이를 마치고 엄마와 이모는 극찬에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일단 다리 아프게 걸어 다니지 않아서 좋았고, 맑은 공기 마시며 조급함 없이 편안하게 쉬며 관람할 수 있어 좋았으며,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운하에서 자매지간에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고 하신다.

 

나도 '호리카와 유람선' 뱃놀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선 삭막한 도시의 일상과 바쁘고 치열했던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 모처럼 여유를 맘껏 누릴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온갖 소음과 미세먼지 가득한 곳에서 탈출해 조용하며 맑고 탁 트인 시야로 아름다운 풍경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처음 '산인 여행'을 계획할 땐, 대도시가 아니어서 불편하거나 볼거리가 별로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었다. 그리고 이런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호리카와 유람선' 뱃놀이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산인 여행'의 공식적인 첫 일정이 성공으로 끝났다. 난 앞으로 남아있는 다음 일정들이 너무나 기대가 됐다. 그리고 그 기대에 대한 설렘을 가슴에 품고 다음 목적지인 '마쓰에성'으로 발을 옮겼다.

 

# 오테마에 호리카와 유람선 승선장에서 바라본 마쓰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