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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한국/제주] 산굼부리 분화구

# 제주 산굼부리

 

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2017년 봄, 천안 소재의 J고등학교 재직 중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순수한 목적의 여행은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꿈에 그러던 곳에 가게 됐는데...

 

수학여행 일정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제주도의 오름 중 유일하게 함몰형 화산이라고 하는 '산굼부리'였다.

 

# 제주 산굼부리 분화구

 

수학여행 둘째 날 숙소인 서귀포에서 제주까지, 그리고 다시 서귀포로 돌아와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으로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나 혼자 몸이라면 괜찮은데, 돌봐야 할 학생들이 40여 명... 자칫 한눈이라도 팔게 되면 어디선가 꼭 일이 터지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설레었던 건, 첫 방문지가 영화 <연풍연가>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산굼부리'였기 때문이다.

 

 

# 제주 산굼부리 전망대

 

이른 봄날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등산할 생각을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상쾌했다.

 

# 제주 산굼부리 기념품 매장

 

 

 

# 산굼부리 입구

 

제주 방언으로 '산에 생긴 구멍'이라는 '산굼부리'는 완만한 경사에 높이도 비교적 낮아 정상에 오르는데 큰 부담이 없었다.

 

넓은 목초지와 함몰된 분화구를 감상하며 5분 정도 걷다 보니 벌써 '산굼부리' 정상에 도착했다.

 

 

# 산굼부리 올라가는 길

 

 

# 함몰된 산굼부리 분화구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주변 산세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우리 반 아이들도 다른 관광객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전통놀이 체험을 할 수 있어 좋았고 말이다.

 

# 산굼부리 정상에서 제기 체험을 하는 아이들

 

# 산굼부리 정상에서

 

하지만 우려했던 일은 이때 터지고 말았다.

 

다음 일정이 있어 졸업앨범에 넣을 단체사진을 찍은 후 '산굼부리'를 내려와야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다 보니 관광객이 별로 없었던 게 문제였다. 그나마 있는 관광객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전부...

 

그냥 내가 빠지고 아이들만 찍어주고 내려올까 생각하고 있는 찰나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

 

"중국 관광객한테 부탁드려보세요!"

 

"맞아, 쌤 과목이 중국어잖아요!"

 

"맞아! 맞아!"

 

'요것들 봐라! 지금 나를 테스트하는 건가? 흥! 본때를 보여주마!'

 

10여 년의 교사생활 동안 내가 기억하는 거라곤 어느 학교를 가나 똑같은 교과서 본문들... 다행히 교과서 본문 중에 사진을 찍어 달라는 내용이 있어 자신 있게 청했다.

 

"请帮我们照张相,好吗?(칭 빵 워먼 쨔오 쨩 샹, 하오 마?)"

 

사진을 찍기 위해 정상 기념비 앞에 줄 서 있던 아이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졌고, 난 그렇게 아이들에게 중국어 교사로서의 신뢰감을 쌓은 후 '산굼부리'를 내려왔다.

 

# 산굼부리 정상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찍어 준 단체사진

 

'산굼부리'는 나에게 그냥 영화 촬영지로, 아니면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장소로써 기억되는 것이 아닌, 사진 한 장 부탁했던 반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의 장소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산굼부리 분화구를 내려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