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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wan/'16 타이베이 여행

[타이완/타이베이]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 타이베이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표지판

 

우리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자!

 

20여 년 전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IMF 한파의 영향으로 대기업은 물론 무수히 많은 중소기업과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당시 실직으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많은 사람들도 문제였지만, 방치된 폐건물들 역시 골칫거리였다. 대도시 같은 경우는 허물고 재건축을 하면 되겠지만, 대다수의 공장들이 시골에 위치해 있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바로 타이베이의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華山1914文創園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는 시골에 방치된 공장은 아니지만, 어쨌든 버려진 폐건물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 타이베이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입구

 

이런저런 사연으로 그 운이 다 돼 쓸모 없어진 건물들 중에는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곳들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 베이징(北京)의 '798예술구', 일본 삿포로(札幌)의 '삿포로 맥주박물관', 미국 LA의 '아트 디스트릭트(Art District)' 등이 그러한 곳들일 것이다.

 

타이베이도 오래된 건물의 존폐 여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일본의 강제 점령으로 인해 도시 곳곳에 식민지 시기의 잔재들이 남아있어, 이것들을 조금씩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골치가 아팠던 것 중 하나가 도심 안에 버려져 있던 양조공장 건물이었다.

 

건물은 허무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타이베이시는 어떻게 하면 비용을 절약하면서 새로운 문화의 공간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새롭게 환골탈태한 곳이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다.

 

#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타이베이 여행의 첫날,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나는 예원이와 근처에 있는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를 찾았다.

 

 

별 기대 없이 단지 호텔에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찾은 그곳은 넓은 잔디 광장, 다양한 DIY 기념품 상점, 전시관, 영화관 그리고 카페까지...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에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문화공간이었다.

 

#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입구에서 조카 예원이와

 

 

 

 

 

 

#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를 둘러보며

 

이전의 폐건물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여기저기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물들과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자적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바로 이런 게 상전벽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흉물스럽다 하여 진작에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지었을 텐데, 타이베이는 오히려 이것들을 잘 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창출하다니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내 오르골 매장에서

 

도심 속에 높게 우뚝 솟은 고층빌딩 숲은 한 나라의 부의 상징이자 현대화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름다운 디자인의 고층건물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서 있다 해도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지 않는 곳들이 꽤 있다. 뭐랄까 조금은 분위기도 삭막하고, 사람들도 기계처럼 움직여 인간미를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고 할까!

 

30여 년 전만 해도 서울은 재개발을 핑계로 많은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어딜 가나 똑같은 모습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녹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 한강을 보고 싶어도 고층 아파트들에 가로막혀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서울을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대형 건축사들은 폐공장 부지를 사들여 건물을 허물고 골프장이나 리조트 등을 지었다. 일반 서민들은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도 골프장이나 리조트 근처는 접근조차도 어려웠다.

 

그래도 근래 들어 우리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 도시 곳곳에 공원과 녹지도 많아졌고, 폐건물을 활용한 문화 휴식의 공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분명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이를 우리 스스로 잘 가꾸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몇 년 전 연남동에 경의선 폐선로를 이용한 숲길이 개장을 했다. 이 숲길을 걷기 위해 연남동 주민들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경의선 숲길은 좋지 않는 소식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공공으로 이용하는 장소에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술을 마시고 쓰레기를 그냥 그 자리에 버린 채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폐건물을 재활용해 아름다운 문화 휴식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들을 오랫동안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도 뒤따른다.

 

타이베이의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오고 문화생활을 즐기지만,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공중도덕을 어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이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것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우리의 서울, 더 나아가 대한민국도 머지않아 진정한 상전벽해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 야경